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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오덕 지음
한길사
1992
이오덕 선생님은 한 평생을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 말글 바로 세우기와 참된 글쓰기에 힘쓰신 분이다. 우리 시대에 이 분 만큼이나 말과 삶이 잘 어울렸던 분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 20여년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때 잡지에 실린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고, 나는 아직까지 그 때의 충격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될 수 있는대로 내가 아는 가장 어렵고 가장 현학적인 말들을 줄줄이 이어 붙이면 그게 좋은 글이나 좋은 시가 되는 줄 알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랬던 내게 이오덕 선생님이 펼쳐 보이는 초등학생들의 꾸밈없는 시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 뿐 만 아니라 불행한 글쓰기 교육을 받아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삶과 글쓰기를 따로 따로 생각해왔다. 우리의 글쓰기 교육은 나를 드러내기 보다 나를 감추도록 강요하고 있다. 입으로 하는 말과 글로 쓰는 말은 당연히 다른 줄 알고 있었다. 구어체니 문어체니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글은 서로 따로 놀고 있다.
말과 글이 따로 놀면 왜 나쁘냐?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그렇다면 다음의 두 시를 비교해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우 눈
심술궂은 아기여우
앙큼한 뒷발질에
가루눈 사르락사르락
흩어내린다
키 작은 향나무
어깨위에
담장 아래 기댄
강아지집 처마위로
명절 기다리는
아이들 설레임에
뽀얀 가루 겹겹이 얹어
모락모락 백설기 익는다 (중략)
아기
아기가 남자가 아니라고 집안 식구들은
매일 욕을 한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수건을 들고
우는 모습을 본다.
"어머니, 왜 우셔요?"
하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할머니께서는 아기 얼굴마저도
돌아보시지 않는다.
여자 놓든 남자 놓든
엄마 마음대로 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설움만 받고 크는 아기.
어째서라도 나는
아기를 키우고 말겠다.
참된 예술적 정서는 테크닉이 아니라 솔직한 삶의 모습에서 나온다. 시골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두번 째 시가 그런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글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져 있다. 위선을 가르치는 글쓰기 교육, 쉬운 것은 유치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현학적인 글들, 그리고 그들이 써내는 온갖 문장작법이니 수능대비 논술이니 하는 쓰레기들....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젖히고 직접 글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생활인의 글쓰기다.
"문제는 작법-쓰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 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도 하지 않았던 말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가 아니면 아무도 그 말을 해줄 사라이 없다는 생각만 가졌다면 다 되는 것이다. (중략) 쓰지 않으면 안되는 말이 있으면 쓰는 법은 저절로 찾게 된다." - 이오덕 <우리 문장 쓰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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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김영사
2004
한의학은 사람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 본다. 예컨대 간, 심장 등의 장기는 손가락, 발가락의 건강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신체부위와 장기는 서로 얽혀있고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서양의학은 아픈 부위에 대해서만 치료를 시도한다. 간이 않좋으면 간을 치료하고 심장이 않좋으면 심장을 치료한다.
동양인들은 전체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반면, 서양인들은 분석적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서양인들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물과 현상을 단순화시켜 분리하고 카테고리화 시킨다. 그러한 결과로 수많은 개념과 정의들이 생겨난다. 이에 반해 동양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여기까지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죽어라고 영어공부하며 서양문화를 배워야 하는 우리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이러한 명제에서 한걸음 더 나갔다. 그는 동서양인들에 대한 다양한 심리 임상 테스트를 거쳐 이러한 동서양인들의 시각 차이를 증명해보이는 한편, 그 시각차이가 구체적인 상황들에서 어떻게 다른 반응으로 나타나는지 연구했다.
예컨대 부분보다 전체 맥락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동양인이 흔히 말하는 영화 속 '옥의 티'를 서양인보다 더 잘 찾아낸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연예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끄는 '옥의 티' 찾기 코너들이 서양에서도 인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동양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자신의 행동에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 '여럿이 있으면 안전하다(There's safety in numbers)'라는 속담은 동양인에 맞는 말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나로부터 나오기보다는 타인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얘기하는 '대마불사'도 이러한 동양적 시각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또한 임상 테스트는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과잉 확신 편향(hindsight bias) 갖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놀라워해야 할 예외적 사건에 대해 동양인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 어지간히 놀랄만한 일이 터져도 '그렇게 될 줄 알았어'하고 반응하는게 동양인들이라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단선적으로 생각하는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더욱 복잡하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원인에서 상식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에서 최대 주주자리가 가족간 대물림되는 전근대적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럴 수도 있지'하고 덤덤하게 넘어가는 이유도 우리가 '과잉 확신 편향'이 있기 때문일까?
'오래 뛰면 숨이 차지?'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오래 뛰면 숨이 차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맞는 말을 들으며 '그거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하고 생각하는 것을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한다. 동양인들에게서 바넘효과가 더 잘 발견된다고 한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이 어떻게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따라서 미국인인 저자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다. 결론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전체를 바라보는 동양적 사고를 분석해서 이론화, 개념화, 카테고리화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서구적 사고다. 그게 이 책의 아이러니다. 결국 이 책은 서양적 사고로 동서양의 사고를 '분석(analyze)'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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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리영희 저/임헌영 대담
2005
한길사
리영희.
해방 이후 90년대까지 진보진영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독재정권에게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웠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와의 대담형식으로 정리된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대화'는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해방후 50여년에 걸친 그의 삶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야만의 시대'에 진실을 추구했던 그의 삶은 그대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합동통신, 조선일보에서 외신부장까지 지냈던 리영희 선생은 마음만 먹었으면 충분히 상류 기득권층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부와 명성 대신 '진실'을 택했고 그 대가는 가혹했다. 수차례 투옥되는 경험을 해야 했고, 그를 가장으로 둔 가족은 궁핍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리영희 선생은 동시대 다른 진보적 지식인들과는 차별화된다. 당시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면 으례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리영희 선생은 당시대 최고의 글로벌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국제정세에 능통했다. 일어, 영어, 불어, 중국어를 구사했으며 외신기자로 활동하면서 늘 관심을 세계에 두고 있었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
이 말은 리영희 선생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의 관심은 항상 세계적이었지만 그의 행동(글)은 항상 지역적이었다. 당시 한반도 문제를 국제정세의 틀안에서 이야기 할 때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해외 정보가 극도로 제한됐던 시대에 그의 글들은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었다.
리영희 선생의 시각이 급진적이라든지 편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는 당파적이지 않다.
그의 관심사는 항상 세계 속에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국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얘기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그의 가치관이 결과적으로 그를 반미 반독재 투사처럼 만들었을 뿐이다.
예컨대 그는 결코 운동권에 무조건적으로 호의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일제 식민지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지만 일본과 미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애정과 경의를 표하고 있다 (대담자인 임헌영씨가 이와 관련된 주제로 미국과 일본 비판을 하다 리영희 선생에게 핀잔듣는 대목도 나온다).
이 책은 자서전이기에 리영희 선생의 인간적 면모도 많이 드러내보인다. 한 인간으로서 리영희 선생을 떠올리면 '무뚝뚝하고 꼬장꼬장한 선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풍류나 낭만을 모르고 오로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만 평생을 보내온 고집불통. 그는 참된 지식인의 모범을 보여주었지만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직장, 좋은 연봉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좋은 교육, 좋은 지식으로 취급되는 것이 대세인 오늘날 자신의 배움과 연구를 '우상'에 맞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바친 리영희 선생. 그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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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훈
생각의 나무
2003
사실 누구라도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랜 기자 생활을 거친 그의 글은 간결하고 힘이 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의 글은 화끈하고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원초적이다가도 어느 순간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며 고고하다.
김훈이 쓰는 글은 근본적으로 그의 눈물, 귓밥, 땀과 다르지 않다. 현장을 중시하는 그의 글은 그의 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몸속에서 걸러내어 글로 배출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방금 짜낸 녹즙처럼 비릿하면서도 싱싱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그 펄떡거리는 싱싱함은 마치 동물원 철창 뒤의 맹수를 지켜보는 것과 같은 조작된 싱싱함이다. 나와 호랑이 사이에 철창이 없다면 생동감 대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훈의 글도 그러하다. 그의 글은 철저한 현장성을 바탕으로 밑바닥에서 쓰여졌지만 밑바닥 현장과 독자 사이에는 김훈이라는 철창이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김훈의 글을 좋아하는 보수 정치인, 강남에 사는 여대생, 논술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 그리고 극우도 극좌도 싫은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김훈이라는 철창 너머로 보이는 ‘실감나는’ 밑바닥 세상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향기 그윽한 헤이즐넛 커피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시궁창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코를 움켜쥘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는 것이 김훈의 글이기 때문이다.
김훈은 밑바닥 삶을 취재하여 글을 쓰고 기득권층 독자들은 돈을 내고 그 글을 구매한다. 운동화는 나이키를, 향수는 버버리를, MP3 플레이어는 애플 아이팟 나노를 사듯 책은 김훈이 쓴 걸 사서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명품 작가’ 김훈은 경제적 풍요로움을 대가로 받는다. 하지만 이런 싸이클이 속도를 내며 반복되는 가운데 정작 김훈에게 '밥벌이를 시켜준' 그 밑바닥 세상은 여전히 소외된 채 그늘 속에 존재하고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고, 작가는 돈과 명예를 얻고, 상류 문화계층은 적당한 교양거리를 얻는다.
김훈은 거대 담론이나 이념 ‘따위’를 믿지 않으며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땀흘리며 만드는 사람들 (예컨대 목수와 같은)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 회색이라고 부를 만한 중간지점에 위치한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칼의 노래 서문에서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 살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작가로서 그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나는 그의 몸에서 나온 그의 글들이 그의 진정성을 담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강요하듯 묻는 질문에 그가 느낄 거부감도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모든 작가가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가 글쟁이로 지나온 지난 시절들이 문화적으로도 얼마나 억압적인 세월이었나를 생각해보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가 글쟁이로서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짐작이 간다.
다 좋다. 무엇보다 재밌게 읽히는데 뭔 말이 많은가.
하지만 나는 이 재능있는 작가가 이념이나 세상을 변혁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너무 시니컬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경하옵는’ 맥아더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이 있기에 오늘날 국가경쟁력 17위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듯, 암울했던 독재 권력의 시기에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밑바닥 인생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 어지간히 하고 싶은 말은 다하며 살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어느 편이냐'는 말이 듣기 싫으면 '너는 왜 왼쪽에 서있냐'라고 물어보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들은 다 죽어야 된다'는 말은 적어도 삼가했으면 좋겠단 말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쓰려다가 어쩌다보니 '김훈의 밥벌이'에 대한 글이 되고 말았다. (200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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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John de Graaf, David Wann, Thomas Naylor 지음
박웅희 옮김
한숲
2002
사회는 점점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지만 인간은 정반대로 더욱 더 소외된다. 그리고 그 고독함을 소비로 메꾸려한다.
'어플루엔자(Affluenza)'는 '독감(Influenza)'에 착안해 '풍요로움에 대한 현대사회의 병적인 욕구'를 일종의 질병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실제로 어플루엔자는 독감처럼 신체적 정신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한 주에 6시간을 쇼핑에 할애하면서 아이들과는 40분밖에 놀아주지 않는다. 이제 쇼핑은 삶을 사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 경제가 풍요로웠던 레이건 시절의 개인 파산율이 대공황 시대보다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입이 증가할 수록 저축은 줄어든다. 지출을 유보시켜주는 카드는 초과지출을 부추킨다. TV는 연일 소비를 유혹하고, 과장된 풍요로움은 빈곤층에게 심한 박탈감을 안겨준다.
대량생산으로 표준화된 제품은 표준화된 인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소비는 탈 개인화한다.
우리 소비의 많은 부분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사회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구매일 경우가 많다. 명품 의류를 사는 것은 그 품질 때문이라기보다 그 명품을 입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쥐 경주(Rat race)에서 이긴다 해도 당신은 여전히 쥐다. 우리가 느끼는 박탈감은 결코 소비로 채워질 수 없다. '도로망이 10% 증가할 때 체증은 5.3% 증가한다'는 조사결과는 팽창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비중독증에 걸린 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물건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60년대 미국 대학생들은 인권, 베트남 등 자기 밖의 대의를 추구했다. 오늘날 학생들은 교수에게 '나를 돈버는 기계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이 책은 소비중독증에 걸린 사회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동시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균형잡힌 접근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미 여기 있는 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면 그만큼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플루엔자의 치료법으로 학습 소모임,절약정신, 자연으로의 회귀 등을 제안한다.
또한 저자들은 국내총생산(GDP) 대신 진정진보지수(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를 새로운 경제지표로 제안한다. GDP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범죄,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의 요소를 고려하는 GPI는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죽을 때 어떤 사람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는가? 돈이 엄청 많았던 사람? 아니면 사랑과 봉사를 이해하고 온전함을 알았던 사람?
후자가 되고 싶다면 이제 내 몸에 퍼져있는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퇴치할 때가 된 것이다.
어플루엔자에 대한 미국 PBS 사이트
이 책의 저자 존 더 그라프는 원래 미국 공영방송 PBS의 프로듀서로 어플루엔자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나의 어플루엔자 감염지수'를 간단한 설문을 통해 측정해볼 수 있고, 그에 대한 치료법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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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명관
문학동네
2004
서른, 잔치는 끝났다.
<고래>를 읽고나서 조금은 생뚱맞게 이 시 제목이 떠올랐다.
최영미의 <서른....>은 80년대와의 이별을 노래하고, 천명관의 <고래>는 지난 세기 벽돌 굽던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이 둘의 공통점을 '모더니즘에 대한 작별인사' 정도로 요약한다면 두 작가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소설의 작가는 책 끝에 붙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어느날 길가에서 마주쳤던 덩치 큰 소녀에게서 느꼈던 슬픔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래>는 노파-금복-춘희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수난사(?)에 대한 얘기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것처럼 이어지는 작가의 입심은 결국 '소설의 본질은 바로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소설 속에는 설화적 이미지들과 원시성이 넘쳐난다. 뭇 남자들을 설레게 하던 금복은 나중에 남자로 돌변하고 체중 120kg, 신장 185cm의 거구인 춘희는 감옥에서 죽음의 격투기를 벌이고 벽돌을 굽다 죽어간다.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괴물들이고, 한결같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구소련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레닌의 동상이 바닥에 팽개쳐졌을때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거대 담론과 그 담론에 일생을 걸었던 사람들의 종말은 드넓은 바다에서 활개치다 그물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혹등고래의 모습처럼 연민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전의 그 어느 소설들에도 빚진 것이 없는 모양으로 독창적인 형식과 입담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 역사를 우회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역시 한반도라는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고래의 죽음은 비장하지만, 그래서 소설 <고래>의 등장은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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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 by Richard P. Feynman & Ralph Lei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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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P. Feynman & Ralph Leighton
W.W. Norton & Company
1985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의 일생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한 인간의 호기심 풀기 과정으로 요약된다.
숙련된 화가의 색상 혼합법에 과학적인 지식으로 대응하고, 심심풀이로 핵무기 비밀문서가 담긴 금고를 따고, 사람과 개의 후각능력을 비교하기 위해 마루바닥에서 개미가 지나간 자리 냄새를 맡고...이렇듯 파인만의 호기심은 진지한 학문적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게 되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자연스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파인만의 태도는 그가 문제의 본질에 어떤 진지한 학자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20대에 아인슈타인 앞에서 강의를 할 정도로 천재성을 지니고 있던 파인만이었지만, 그도 학문적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로스 알라모스에서 핵 개발에 참여했던 이후 코넬 대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주가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에 정작 연구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 결국 파인만은 학문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고 그냥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하고싶은대로 물리학과 '놀았던' 결과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던 이론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파인만의 일생은 결국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물리학자에 대한 이야기니 만큼 물리학에 대한 내용이 군데 군데 있어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얘깃거리로 생각하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He says, "Feynman, that's pretty interesting, but what's the importance of it? Why are you doing it?"
"Hah!" I say. "There's no importance whatsoever. I'm just doing it for the fun of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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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페트로스키 Henry Petroski 지음
이희재 옮김
지호
1995
우리 주변에는 너무 흔히 볼 수 있어 마치 이 세상 시작부터 그게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물건들이 많다. 숟가락을 생각해보자. 숟가락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우리가 인터넷 발명 이전 인터넷이 없다고 불편해하지 않았던 것처럼 숟가락 발명 이전 사람들도 숟가락 없이 식사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노베르트 앨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에 따르면 중세시대 서구에서는 왕도 손으로 식사를 했었다.
페트로스키의 저서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원서 제목(The Evolution of Useful Things)에서 알 수 있듯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들이 어떻게 처음 만들어졌으며 어떤 경과를 거쳐 변화해왔는지에 관해 고찰한 독특한 책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페트로스키는 '욕심 또는 사치'가 발명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디자인된 물건의 형태는 선택이나 우연에 의해 결정되며 그 무엇에 의해서든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양톱은 밀면 썰리고 동양톱은 당기면 썰린다. 이는 하나의 기능이 단일한 형태로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페트로스키는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수저, 못, 포크, 스카치테이프, 지퍼, 캔 등을 사례로 다루고 있다. 처음 발명되어 특허를 낼 당시의 특허 문건에 나타난 해당 물건들의 모양새를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물건들이 실제로는 소수의 선구자들에 의해 최초로 태어나 얼마나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진화해왔는지 감탄하게 된다.
모든 인공물의 공통된 특징은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개선이 시도되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형태와 맥락사이의 균열을 낳는 부조화, 말썽, 힘을 해소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MAYA (most advanced yet acceptable)'라는 기준을 만족시켜야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 제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라면 그 디자인은 한낱 실험에 그치게 될 뿐이다.
페트로스키는 "우리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을 당연시하고, 광고를 보고서야 그 물건이 왜 새로운가를 배우게 되는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요즘 한달이 멀다하고 내용이 계속 바뀌는 휴대전화 광고를 생각해보면 마치 뉴 테크놀러지를 소비자에게 교육시키는 교육프로그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최첨단 물건들만 진화중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오래된 물건들도 여전히 진화중에 있다. 우리가 아무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는 클립도 10년뒤에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을지도 모른다. 10년뒤의 사람들은 10년전의 클립을 보며 '이렇게 불편한 걸 어떻게 썼을까?'하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페트로스키가 내린 인공물에 대한 정의는 손에 잡히는 물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 즉 이데올로기에도 들어맞는것 같다. 이데올로기도 '기존의 것에 대한 불만으로 진화하기 시작'하고 '형태가 기능을 따르지 않'으며 '불완전성'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데올로기가 '쓸모있는 물건(useful things)'에 속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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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Agent Nation: How America's New Independent Workers Are Transforming the Way We Live
다니엘 핑크 지음
석기용 옮김
에코리브르
2001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기업 고용주는? 제너럴모터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닌 임시직 알선회사 '맨파워 주식회사'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직인간의 신화는 붕괴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프리 에이전트들이 급속히 메꾸고 있다.
20세기 대량생산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테일러주의(Taylorism)는 일대 일 맞춤 생산 방식인 테일러주의(Tailorism)으로 대체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을 겪은 한국에서도 조직인간의 성공신화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많지 않다. 조직에 속해 조직을 통한 노동의 댓가로 먹고 살며 자아실현을 하는 대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 책은 이미 미국에서 그러한 방법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숫자가 급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프리 에이전트들의 대거 출현이 결국은 미국 사회의 생활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리 에이전트는 주체적으로 업무 관계자들을 대하며, 자신의 업무에 관해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을 진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다른 프리에이전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새로운 형태의 업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사회 기반시설은 프리 에이전트 노동의 토대를 제공하는 형태로 바뀌어 간다. 예컨대 핑크에 의하면 스타벅스는 커피 마시는 곳이라기 보다는 프리 에이전트들의 회합 장소, 일종의 업무 회의실이다.
프리 에이전트의 등장은 산업화 이후 구분되었던 직장과 가정을 다시 엮어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택근무는 공교육 대신 아이들을 집에서 직접 가르치는 재택교육까지 가능토록 만들어 결국 미국의 중고등교육에 위기가 올 것이라는게 핑크의 주장이다.
그러나 프리 에이전트의 등장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24시간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종의 24시간 편의점과 같은 생활을 계속 해야 한다. 또한 많은 프리 에이전트들이 비정규 임시직이라는 굴레에서 오히려 조직인간 시절보다 더 비인간적인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20세기 조직인간의 성공신화는 근로자들을 조직에 더욱 충성스럽게 만들기 위해 권력층이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프리 에이전트는? 프리 에이전트는 내가 사회와 주체적으로 상호관계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제 열쇠는 조직이 아닌 개인에게 쥐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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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프리드먼 Thomas L. Friedman 지음
창해
2000
이따금씩 발생하는 해외 대도시에서의 테러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이런 외국의 테러 사건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저 멀리 런던에서 터진 폭탄의 파편은 언제든 우리 발등에도 떨어질 수 있다.
또 하나. 이러한 테러는 냉전 이후 국제적 분쟁이 어디에서 싹트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냉전시대는 흑백 시대였다. 전 세계가 미국편과 소련편으로 갈라져 '내 편이 아니면 모두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이 냉전시대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했다. 선과 악은 분명했고 전선(front line)도 뚜렸했다.
하지만 냉전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가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애증의 관계' 혹은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가 되었고 전선은 불분명하다. 국제적 분쟁도 어느 특정 국가가 일으킨다기 보다는 특정 집단, 특정 개인이 일으키는 세상이 됐다. 오사마 빈 라덴이 그 사실을 몸소 입증(?)해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즈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바로 이러한 냉전 이후 국제질서에 관한 책이다. 다른 세계화 서적에 비하면 나름대로 세계화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세계화는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어떤 국가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인 것이다.
미국계 일본인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이런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일컬어 '역사는 끝났다'고 오만하게(?) 선언했다. 공산주의는 완전한 실패로 끝났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가 세계를 장악했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자유주의의 발전 뿐이라는 것.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도 소련도 아닌 국제 금융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철저히 이익을 좇아 움직일 뿐 어떤 배려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구미에 맞추지 못하는 나라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세기말 한국을 포함, 아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이 겪었던 금융위기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대세에 저항한, 또는 제대로 적응하거나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 프리드먼의 진단이다.
누구나 외국을 나가면 집 생각이 간절하고 애국자가 된다. 사람들에게는 외부와 활발히 교류하고자 하는 본성과 내면으로 파고드는 본성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원심력과 구심력은 오늘날의 세계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키워드다.
이 책의 제목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각각 세계화와 자아 정체성을 상징한다. '렉서스'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에서 따왔다. 글로벌 생산시스템하에서 생산되고 판매되는 일본 자동차는 곧 세계화를 상징한다. 반면 '올리브 나무'는 사람들이 자기 준거점으로 삼는 그 무엇 (민족 정체성, 문화, 언어 등)을 상징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중동의 올리브 나무를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싸운다는 발상에서 따온 말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세계화가 안착(soft landing)하기 위해서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가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강제된 세계화에 개도국 국민들이 느낄 반발심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 제목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공평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건 어쩌면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의 최고 신문 뉴욕타임즈 기자가 이야기하는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느끼는 불공평함일지도 모르겠다. 프리드먼이 말하는 올리브 나무에 대한 배려는 지속 가능한 세계화를 위해서일 뿐 올리브 나무 그 자체를 위해서는 아닌 것이다.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이 시대 게임의 법칙이며, 이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단정짓는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개도국 어느 외딴 휴양지에 휴가를 갔을 때 거기에서까지 빅맥을 먹고 싶진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지친 도시생활을 떠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국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환경은 보호되고 문화적 다양성은 유지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세계화가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흐름은 미국의 통제권 밖에 있다고 말한다. 기술, 금융, 정보의 민주화가 세계화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미국을 너무 미워하지 말란 얘기?
이 책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흥미로운 이론도 하나 발견된다. 이른바 '골든 아치 이론(Golden Arch Theory)'이다.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이 있는 국가들 끼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된 지역은 정치 군사적으로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쎄...내가 보기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보호를 위해 서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미국이 손쓰는 결과가 아닐까? '미국 종속 평화 이론' 쯤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은데...
물론 프리드먼은 세계화가 모든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것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쳐진다는 경고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하는 '황금 구속복(golden straitjacket)을 입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winner-take-all)' 세계화에 동참하라고 호소한다.
그의 말대로 21세기 게임의 룰은 세계화다. 주변국 국민들은 좋든 싫든 일단 이 체제 속에서 살아남을 방도를 찾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그러한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프리드먼이 어느날 갑자기 해고통지를 받게 되는 태국의 어느 은행원이었어도 해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유치하고 무의미하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이 세계화이고 그는 모든 것을 가진 국가의 모든 것을 가진 신문사 기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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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민규 지음
한겨레신문사
2003
1982년 봄, 중학교 1학년이 된 나와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팬클럽 가입원서를 손에 꼭 쥔 채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촌스럽고 조악하기 그지없던 스포츠 가방과 모자, 그리고 야구점퍼를 받아들고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왜 하필이면 삼성 라이온즈였을까? 나 자신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2005년 여름, 내가 야구를 보지 않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여년이 되어간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TV에서 야구 중계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한 때 프로야구 선수들 스티커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고구마콘을 하루에도 몇개씩 사먹으며 선수들의 프로필을 외우던 때가 언제였는지 싶을 정도로 지금 나는 프로야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한 때 라이온즈 점퍼를 자랑스럽게 입고 라이온즈 팬클럽 회원증으로 입장료 할인을 받으며 동대문운동장에 라이온즈 경기를 보러다녔던 때가 언제였는지 싶을 정도로 2005년 여름, 나는 야구에 무관심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나와 같은 시기에 중학교에 들어가 같은 시기에 프로야구를 겪은 사람이다. 프로야구 원년 그는 '영원한 꼴찌'가 될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에 가입했고 나는 오늘날 '한국의 뉴욕 양키즈'로 불리울 삼성 라이온즈 팬클럽에 가입했다. 그렇지만 무슨 차이가 있으랴. 어차피 한국의 프로야구는 전두환 독재정권의 피비린내나는 권력쟁취의 후유증을 무마하기 위해, 지금 생각하면 저질 코미디에 가까운 '국풍 81'이라는 이상한 전국적 이벤트와 함께 출범한 들러리에 불과한 것을.
과거의 패배자와 아웃사이더는 현재의 승자와 주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이자 액세서리다. 당시 그들이 흘렸을 피눈물과 고통은 현재의 소비자들에게 구매욕을 당기는 독특한 상품으로 다가온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나 '슈퍼스타 감사용'이 주목받는 이유, 불량식품이던 '뽂기'가 대학가에서 많이 팔리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현재에서 재현될 가망성이 없는 과거는 엉망진창일수록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오늘날의 패배자들이나 아웃사이더들도 미래에는 수익성 좋은 아이템으로 개발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코미디언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우리보다 멍청하고 못났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일고 있는 '노스탤지어 마케팅' 또한 그 구질구질하고 못났던 시대의 사람들과 오늘의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래서 체 게바라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이 오늘날 코미디언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솔직해지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80년대의 전형적 패배자(loser)였던 삼미 선수들처럼 나는 그때에도 패배자였고 지금도 패배자다. 뇌성마비 장애인이 뇌성마비 흉내를 내는 개그맨을 보고 웃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소설속의 삼미 선수들은 내게는 격리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주인공 '나'는 어느날 갑자기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는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이건 아무한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패배자는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다. 무지하게 공부 열심히 하면서도 좋은 대학 가지 못하는 '패배자'들이 옛날에도 지금도 많이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그 가공할 패배성과 촌스러움 때문에 언제라도 상품화될 소재였다. 소설가 박민규가 그 아이템을 선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시의적절한 소재만큼 이야기를 적절히 풀어내진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너무 많이 나갔다. 삼미 슈퍼스타즈 얘기를 IMF와 실직사태, 그리고 국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말의 저항까지 끌고 나간 것은 이 소설을 다분히 통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의 글쓰기는 21세기에 분명 환영받을 만한 종류의 것일지는 몰라도 정작 주인공 '나'와 같은 동시대에 프로야구 원년을 겪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자, 어쨌든 아웃사이더였던 소설가가 아웃사이더의 상징과 같은 옛 프로구단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대박을 터트리고 주류 소설가로 자리잡았다. 얻은 것은 액세서리요, 잃은 것은 박제되어버린 삼미 슈퍼스타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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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by Michael Moore
Warner Books
2003
몇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Bowling for Columbine'으로 장편다큐멘터리 감독상을 수상한뒤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Shame on you Mr. Bush!"라고 외쳤다가 관객들의 야유(Boo)를 받았던 사람.
다큐멘터리 'Fahrenheit 9/11'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사람.
'Fahrenheit...'가 부시 재선을 막기위해 만든 영화라면 'Dude, Where's My Country?'는 그가 부시 재선을 막기위해 쓴 책이다.
'Fahrenheit...'가 미국내 배급망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듯 'Dude...' 또한 출판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7 Questions for George of Arabia"에서 마이클 무어는 부시 가문이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빈 라덴, 알 카에다 등과 석유 이권을 놓고 지난 25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한다. 9.11 테러 직후 미국 내 있던 빈 라덴 가문의 사람들을 FBI 조사가 있기도 전에 전용기를 이용하여 국외로 내보낸 것은 그러므로 무어가 보기에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Home of the Whopper"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미국인들에게 한 거짓말(Whopper), 또는 협박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라크는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되어 있지도 않았다. 프랑스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다.
부시가 연합군(Coalition of Willing)이라고 떠벌였던 나라들을 들여다보면 아프가니스탄, 아제르바이잔.....과연 이런 국가들의 연합이 세계를 대표하고 있는가? 등등 무어는 부시가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인들을 거짓말로 겁주며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왜 부시가 재선되어서는 안돼며, 그가 무슨 잘못들을 저질러 왔으며, 부시 재선을 막기 위한 행동지침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또 부시 재선을 막기 위해 내세울 수 있는 대통령 후보들은 누가 있는지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한마디로 '부시 재선 방지 캠페인 서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부시에 대한 불신과 적대심으로 가득차 있다.
마지막으로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후보들을 나열하면서 그는 Ophra(!)가 부시를 꺾을 수 있는 최선의 카드라고 매우 진지하게 주장한다. 그녀는 여성이고 흑인이며 모든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머니 같은 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오프라 카드가 쓰기 어렵다면 민주당과 녹색당 등 진보 진영이 연합해서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고 무어는 주장한다.
덧붙여 그는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을 제안한다. 투표를 하고 난 사람에게는 해당 동네에서 벌어지는 콘서트나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티켓을 주자는 것.
국가의 국민에 대한 으름짱, 진보의 분열, 높은 투표율이 보수에게 미치는 영향 등 무어가 얘기하는 미국의 정치상황, 그리고 문제에 대한 그의 해법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제 우리나라가 미국과 견줄 만큼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가 그동안 믿어왔던 만큼 사실 그다지 선진적인 민주주의의 땅이 아니었던 걸까?
모든 사람이 무어처럼 전투적으로 정치활동을 한다면 세상은 피곤하고 팍팍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사람의 무어(a bunch of Moores)는 이 세상을 더욱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지 않을까?
그가 어쨌거나 부시는 재선에 성공하여 오늘도 국제경찰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니까.
-무어가 소개하는 보수주의자와의 대화법-
1. First and foremost, assure your conservative friends or relatives that you do not want their money.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보수적인 친구나 친척들의 돈이 축나는 일을 하자고 하는게 아니라고 안심시키는 일이다.
2. Second, every political argument you make must be about them and for them.
그 다음 중요한 점은 모든 정치적 주장은 그들에 관한, 그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3. Journey into the mind of the conservative.
보수주의자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라.
4. Respect them the way you would like to be respected.
당신이 존중받고자 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존중해라.
5. Tell them what you like about conservatives.
당신이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장점을 얘기해 줄 것.
6. Admit that the left has made mistakes.
좌파도 많은 잘못을 저질러 왔음을 인정해라.
*마이클 무어의 홈페이지 : http://www.Michaelmoo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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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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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from꿈꾸는 넝마주이..
2010/08/22 00:00
책읽기를 꾸준히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음에 드는 저자에 이끌려 그의 모든 작품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관심분야의 책을 두루 탐독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필독서’라 불리는 책들을 읽어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때론 책읽기에 지칠 때가 분명 온다. 그럴 땐 ‘우연’ 혹은 ‘기적’처럼 다시 책읽기를 이어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책과의 만남도 그런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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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 지음
바다출판사
2004
편집자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우리는 책을 고를 때 저자나 출판사를 선택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 책의 편집자였냐를 따지며 책을 고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의 보이지 않는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저자에게 글을 쓰도록 설득하는 일부터 책의 기획과 컨셉 설정, 디자인, 인쇄, 출판 마케팅까지 편집자는 일인다역을 해내야 한다.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 사이에 서 있는 존재다. 저자의 경험이 값어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자들의 가슴에 울림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원석을 가공하는 보석 세공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20여년간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의 '분투기'는 이렇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편집자에 관한 이야기다.
한 권의 책은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의 일부가 된다. 좋은 책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반대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일시적인 트렌드나 선정성에 영합하여 만들어진 책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독소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에게는 다양한 경험과 기술 뿐 아니라 건전한 가치관과 인격적인 성숙함도 요구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자본의 논리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분야도 있다. 학생들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여 지도하는 교사, 환자에게 자신이 돈 봉투를 받은 제약회사의 약품을 처방하는 의사를 떠올려보라.
출판시장에서도 시장 경쟁 원리가 득세하게 되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독자들의 몫이다.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이 그런 우려가 지나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갈수록 책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특히 경영, 자기관리, 처세 등에 관한 책들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불안한 고용시장, 불투명한 미래....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관심을 끌기 위해 별다른 고민없이 급조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래서 저자도 지나치게 트렌드에 민감한 기획출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 필요한 책이 모두 시장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 논리 속에서 이런 책들은 나오기 어렵다. 따라서 편집자에게는 문화산업 종사자로서의 사명감이 필요하고, 정부는 이러한 편집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주변에는 호흡 짧은 날림 서적들만이 판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후배 편집자들에게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독창적인 기획은 거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정해 깊이있게 파고들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성공출판 사례 뿐 아니라 실패한 출판 사례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저자의 오랜 출판 경력이 녹아있는 글이라 실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이 있다.
저자는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주도록 만들 줄 아는 것이 최고의 편집기술이라고 말한다.
이제 서점에 가면 당신에게 어떤 책이 말을 건네고 있는지 느껴보자. 그리고 그런 책을 만나게 되면 그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저자 다음으로 고생한 편집자에게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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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지음
돌베개
2004
"우리는 공자가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공자가 아니라 논어 텍스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서의 공자를 가정하고 일상 속의 인간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잘못됐으니 이처럼 비범한 말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 훈계로 일관된 번역과 해설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고전 읽기는 우리의 일상을 얕보는 천박한 사고를 부추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안락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만이 참된 의미에서 우리의 고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법으로 번역한 논어를 기다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전호근 경기대 교수가 2005.5.31일자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 중에서 발췌)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으로 유명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학교에서 강의했던 고전 강독을 책으로 엮어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동양 고전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신 교수에 의해 논어와 맹자는 권위와 고리타분함을 벗어던지고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펄떡이며 숨을 쉬게 된다.
이 책은 제목을 '관계론'이라고 바꿔도 좋을 만큼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양 철학과 사상이 인간 개인에 중심을 둔 존재론이라면 동양의 세계관은 만물간의 관계에 중심을 둔 관계론이라는 것. 우리의 관계를 '네'가 져야 '내'가 이길 수 있는 서로 배타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가능케하는 상호보완적이고 유기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시각이 동양 사상의 바탕에 깔려 있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 논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을 즐긴다는 것이다. 논어가 씌여진 시대에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일을 즐기는 것을 마치 요즘 젊은 세대의 특성인양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고전을 읽지 않아 갖게 되는 선인들의 생각에 대한 오해다.
愛人若愛己身 - 墨子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묵자에 나오는 이 문구는 성경의 구절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 특히 동양고전이 고루하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전이란 오랜 동안의 세월을 거쳐 검증된 선인들의 경험과 지식의 집약물이다. 따라서 어떠한 시대를 살고 있든 그 내용을 오늘에 반추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훌륭한 준거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고전과 사상가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관계론적 시각이 관철된다. 신 교수는 이들간의 차이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고전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환경에 비추어 평가해야지 오늘날의 시각으로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법치를 엄격하게 내세운 법가의 사상이 교조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정치상을 감안한다면 법가가 법치에 그토록 집착했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신 교수는 ' 不忍人之心 '을 인용하면서 각박해져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바로 '만남의 부재'라고 지적한다. 서로 보고 만나고 알면 '불인인지심'이 생겨 나쁜 짓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가 '관계'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모든 만남은 일회성으로 그쳐 우리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보고도 방관하게 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靜勝躁 寒勝熱 凊靜爲天下正 - 老子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아 사용해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찬 것은 마치 비어있는 듯 하여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 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 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자본주의는 체제의 존속을 위해 필연적으로 속도와 팽창을 강조한다. 노자가 보여주는 완전함의 경지는 찰나적이고 외형적인 성공에 일희일비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해준다.
장자에는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란 말이 나온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글로 남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란 뜻이다. 책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책 자체가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마치 문법이 회화를 대신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제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도 항상 현실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그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다. 신 교수의 '강의'가 그 사실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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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ll of Advertising & the Rise of PR by Al Ries & Laura 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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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 Ries & Laura Ries
Harper Business
2002
길 가는 나그네를 두고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하는 이솝 우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람은 억지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다 실패하지만, 해는 따뜻함으로 나그네가 스스로 외투를 벗게 만든다.
바람은 광고이고 해는 PR이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The 22 Immutable Laws of Marketing)', '포지셔닝(Positioning)' 등의 마케팅 저작으로 유명한 알 리스가 부인 로라 리스와 함께 펴낸 책 'The Fall of Advertising & The Rise of PR' - 국내에는 '마케팅 반란'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 은 제목에서 분명히 말하듯 마케팅 도구로서 PR이 광고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책이다.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하면 그 동안 PR은 광고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가는 미국에서 이럴진대 국내에서 PR이 받는 대접은 더욱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광고와 PR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국내 실정에서 이 책은 거의 이상론에 가깝게 읽힌다.
광고는 TV, 신문, 라디오 등 각종 매체의 공간을 광고주가 구매하여 그 공간에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공중(audience)에게 전달하므로 직접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띠고 있다. 매체는 단지 공간을 팔 뿐 그 공간에 담기는 메시지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PR은 매체를 설득하여 매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뤄줄 수 있도록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는 매체, 즉 기자이므로 간접 커뮤니케이션이다.
당연히 광고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신뢰도가 떨어지는 반면, 홍보는 비용이 적게 들고 신뢰도가 높다. 단, 홍보의 경우 메시지를 콘트롤 할 수 없으므로 일정 부분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동안 (사실은 현재에도) PR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부수적인 도구로 취급되어왔다. 대규모 예산을 들인 광고가 브랜드 런칭을 시작하면 PR은 측면 지원하는 식으로 마케팅 캠페인이 이뤄지고 있다.
저자는 광고건 PR이건 매출 증가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광고의 경우 광고 그 자체의 완성도와 미학에 매몰되어 국제 광고상을 수상한 광고가 정작 매출 증대에는 기여하지 못하는 주객 전도의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제3자(The 3rd Party)의 힘', 이것이 홍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마케팅의 주요 도구로서 광고보다 홍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광고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광고의 역할이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벅스, 바디 샵, 아마존닷컴, 야후, 이베이, 구글, 플레이스테이션, 보톡스, 해리포터....이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는 광고의 성공이 아니라 PR의 성공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PR의 시대에 PR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광고는 PR이 구축한 브랜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 제4장의 소제목들은 저자가 광고와 홍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 광고는 바람이고, 홍보는 태양이다 Advertising is the wind. PR is the sun
- Advertising is spatial. PR is linear
- 광고는 한방을 노리지만, 홍보는 천천히 쌓아간다 Advertising uses the Big Bang. PR uses the slow buildup
- 광고는 시각을 이용하고, 홍보는 입을 이용한다 Advertising is visual. PR is verbal
- 광고는 모든 이들에게 어필하지만, 홍보는 특정인들에게 어필한다Advertising reaches everybody. PR reaches somebody
- 광고의 방향은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지만, 홍보의 방향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정한다 Advertising is self-directed. PR is other-directed
- 광고는 죽지만, 홍보는 살아남는다 Advertising dies. PR lives
- 광고는 비싸지만, 홍보는 저렴하다Advertising is expensive. PR is inexpensive
- 광고는 브랜드 확장을 선호하지만, 홍보는 브랜드 창출을 선호한다 Advertising favors line extensions. PR favors new brands
- 광고는 오래된 이름들을 좋아하지만, 홍보는 새로운 이름들을 좋아한다 Advertising likes old names. PR likes new names
- 광고는 재미있지만, 홍보는 진지하다 Advertising is funny. PR is serious
- 광고는 창의적이지 않지만, 홍보는 창의적이다 Advertising is uncreative. PR is creative
- 광고는 의심스럽지만, 홍보는 신뢰할만 하다 Advertising is incredible. PR is credible
- 광고는 브랜드 유지용이고, 홍보는 브랜드 구축용이다 Advertising is brand maintenance. PR is brand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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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전략The Substance of Style
버지니아 포스트렐Virginia Postrel 지음
신길수 옮김
을유문화사
2004
'나'만의 개성.
21세기 문화 마케팅을 요약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기 위해 온라인 아바타를 꾸미고, 싸이 홈피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고, 과감한 패션이나 명품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나만의' 개성일까? 주변에 온라인 아바타 한 번 꾸며보지 않은 사람, '싸이질'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 땅에 끌리는 힙합바지는 강남역 거리에 10분만 서 있으면 여러 명을 볼 수 있다.
시장의 형태는 일종 다생산의 대중 시장(mass market)에서 다종 다생산의 대형 시장(large market)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중 시장들이 모여 하나의 대형 시장을 만든다. 이제 시장은 단 하나의 획일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여러 종류의 대중 상품(mass product)을 만들어낸다. 사실 내가 선택한 제품은 나만의 개성이 아닌, 내가 선택한 제품이 속한 대중 시장(mass market)의 개성일 뿐이다.
우리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자신의 개성을 갈구하지만, 한편으로 동일한 무리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정말로 혼자만이 무엇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불안감이 우리를 엄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것이라 해도.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은 사회적, 제도적으로 현실화 단계에서 억압된다. 결국 튀지 않고 무난한 디자인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룬다. 오늘날 디자인 강국이 된 이탈리아를 보자. 이탈리아는 추함을 용인하는 사회다. 창조적인 실험정신을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나갈 방향을 잃는다.
디자인은 구매와 소비를 이끄는 주된 의사결정 요인이다. 책 내용과 상관 없이 오늘 내가 입은 옷과 책표지 디자인이 잘 어울린다면 그 책을 들고 집을 나설 때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경우 그의 정치활동보다 헤어스타일이 늘 더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제품 선택에 있어 디자인이 기능보다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이제 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꽃미남'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세계의 남자 패션계를 강타하고 있는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스타일은 남자들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포스트렐은 디자인, 아름다움이 대세로 굳어가는 현상을 '외모 지상주의'로 비판하는 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아름다움과 기능이 상반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Smart & Pretty)'라는 우리 속담을 그가 알게되면 좋아할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는 아름다움과 기능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금발 백인여자에 대해 사회가 지니고 있는 (금발 백인여자는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뒤집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 버지니아 포스트렐의 저작 '스타일의 전략' 한국어판은 운이 좋지 않은 책이다. 원작자와 번역자 모두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포스트렐이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독자들이 관심을 갖기 충분했으나, 그것만으로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일의 전략'은 야심차게 출발해 지리멸렬하게 끝난다. 군데 군데 들어간 이미지도 글과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번역본은 관념적이고 애매모호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 원작 자체가 대단한 글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읽다보면 번역가 자신도 글의 맥락을 제대로 짚지 못한 상태에서 한 문장 한 문장 힘겹게 번역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당초 왜 이 책의 번역에 손을 댔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포스트렐은 책 속에서 '미학은 의사소통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과 국문 번역가는 '스타일의 전략'을 통해 독자와 제대로 의사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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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지음
이세욱 옮김
기욤 아르토Guillaume Aretos 그림
열린책들
2003
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에는 사물에 붙어있는 명칭들에 회의를 품고 자신만의 언어로 사물 부르기를 시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넓고 납작한 사각형의 판이 얹혀지고 네 다리 달린 사물을 한국인은 책상, 미국인은 Desk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사물의 본질은 책상도 Desk도 아닌 다른 무엇이다. 인간은 이 다리 넷 달린 사물의 본질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결국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인간은 주어진 언어의 도움없이 자신이 직접 사물과 마주서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사물들과의 대면 경험을 엮어 나만의 언어로 씌여진 백과사전을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소설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릴 적부터 그런 종류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가 열네살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온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설명을 엮어놓은 책이다.
이 백과사전 속 표제어들은 파리부터 외계생물까지 특정 경계선 안에 머물지 않고 과학, 역사, 인류학, 문화, 정치 등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든다. 그러나 '개미'의 작가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가는 개미를 포함한 여러 곤충들의 미세한 생활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표제어 '세계를 창조하는 법'에서는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어린 신(神)에게 세계를 만드는 9단계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조리법을 읽고 있노라면 그대로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표제어 '다르게 생각하기'에서 베르나르는 "인간의 사고를 혁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그가 이 백과사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말일지도 모른다.
이 책과 관련해서는 번역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매우 까다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번역의 흐름이 퍽 매끄럽게 읽힌다. 또한 순 우리말을 가능한 많이 쓰려고 한 번역자의 노력이 군데 군데 엿보인다. 표제어 순서를 ABC순이 아니라 ㄱㄴㄷ순으로 배치한 발상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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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2004
시장개방, 국내외 상품의 평등한 경쟁, 지적재산권의 확립, 고도로 발달한 주식시장과 같은 명제들은 후진국들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선진국들과 그들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들은 후진국들에게 이러한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선진국들은 과연 그들이 주창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실히 따른 결과 지금과 같은 선진국이 되었을까? 저자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선진국들은 불평등한 무역제도, 해외 지적재산권의 무시, 강력한 수출장려정책, 허술한 중앙은행 체제 등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이 선진국이 되고 나서 후진국들이 과거 자신들이 했던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먼저 사다리에 올라간 사람이 뒷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고'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 장하준 교수는 경제사적 관점에서 위와 같은 사실을 풍부한 문헌을 통해 입증해보인다. 한국인인 저자가 서양 경제사에 대해 이토록 방대하고 심도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책은 이미 가진 자(haves)의 기준이 아직 가지지 못한 자(have nots)에게 강요되선 안된다는 사실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후진국들이 선진국들의 발목잡기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서 뿐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한국인과 외국인노동자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사다리 밑에 있는 사람은 위에서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람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저 위에 있으면 나는 과연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을까? 만원버스에 가까스로 올라탄 다음 뒷 사람이 더 이상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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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경열
조선일보사
2004
디카 시대다. 결혼, 졸업, 돌 잔치에서나 꺼내들던 카메라가 이제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디카 붐을 타고 사진 관련 책들이 적잖이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사진 후보정 작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포토샵 서적, 디카의 특성을 살린 사진 찍기 비법(?) 책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진기자 정경열 사진을 말하다'는 보도 사진에 관한 책이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사진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맞이한 신문 사진과 사진기자들이 겪고 있는 변화와 도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간지는 전날 저녁까지 있었던 갖가지 사건과 행사들의 사진을 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 신문 기자들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인화하고 다시 그 사진을 마감 전 윤전기 인쇄를 위해 본사로 보내는 과정은, 저자의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 동정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신문 기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 오늘날에는 아무리 저녁 늦은 행사 취재라도 현장에서 온라인 클릭 한 번으로 본사에 보낼 수 있게 됐다.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생활방식, 문화의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디카가 포토 저널리즘(Photo Journalism)에 가져온 가장 변화는 무엇일까?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연기로 가득찬 차량 내부를 디카로 찍어 언론에 제보했던 어느 승객의 사례는 이제 보도 사진이 사진 기자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있을지 모르는 '결정적 순간'을 잡는 일반인의 디카가 사진기자의 전문가용 SLR 카메라보다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몇 해 전 미군들이 포로 수용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고 있는 사진들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 시작은 미군들이 장난삼아 찍은 디지털 사진이었다. 무한 복제와 순식간적인 배포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이 여론에 미칠 수 있는 효과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흔히 신문 기사의 '행간'을 읽는다는 말을 한다. 겉으로 드러난 기사의 뜻 외에 그 저변에 숨겨진 속뜻을 읽어낸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사진 기자인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는 사진 기자의 일상과 애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신문 사진 뒤에 숨겨진 의미도 읽어낼 수 있다.
선거철이면 선거 관련 보도사진들을 놓고 말들이 많다. 사진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는 듯 하지만, 사실 우리가 보는 사진에는 필연적으로 촬영자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보도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기자들은 필연적으로 특종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때때로 무리수가 나오기도 한다. 사진을 조작하거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위험한 수위까지 접근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 사진 기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주로 보도 사진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언론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홍보 담당자들이 읽으면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신문 사진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주체적으로 해석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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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수일
창비
2004
단국대 사학과 아랍인 교수 '무함마드 깐수', 북한 공작원, 주 모로코 중국대사관 외교관, 12개 국어 구사...정수일씨의 이력을 살펴보면 흡사 첩보영화의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하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는 정수일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서 지낸 5년 동안 부인에게 띄운 옥중서신을 엮어낸 책이다.
시대, 학문, 겨레. 이 세 단어는 정씨가 스스로의 삶을 규정하는 단어들이다. 그는 '시대의 소명을 받들어 학문으로써 겨례에 봉사하는 것'이 분단시대 지성인으로서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옥중서신의 미덕은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외부와의 접촉없이 자신을 반추하고 사색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사상 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섬세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편지 곳곳에는 공안당국에게 체포되기 전까지도 자신의 정체를 몰랐던 부인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도 진하게 묻어난다. 아울러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 대해 스승으로서 미안한 심정도 절절히 느껴진다. 또한 '문명교류사'를 개척하는 학자가 감옥 창살을 통해 내다본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도 읽을 수 있다.
위장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쓰고 옥살이를 했지만, 정수일씨는 겨레를 사랑하는 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그의 편지들은 보여준다. 북경대를 졸업하고 중국 외교부의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던 기회를 스스로 박차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스스로의 처지를 빗대어 '수의환향(囚衣還鄕)'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옥중서신집을 읽다보면 여러 번 놀라게 된다. 우선 12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그의 놀라운 우리말 솜씨는 읽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다. 동서양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맛깔나는 우리말로 풀어놓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정씨는 그런 글솜씨에도 모자라 감옥에서 국어사전 하나를 통째로 독파했다고 하니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그 뿐 아니다. 정수일씨는 책상 하나 변변히 없는 감옥에서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국내 최초로 번역하고 '씰크로드학'을 집필하는 등 엄청난 지적활동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학문에 대한 그의 그치지 않는 열정은 무릇 학문하는 사람들은 깊이 본받아 마땅한 모범을 보여준다.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세를 얻고, 서구의 것이면 언어든 문화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늘의 세태에 정수일씨는 경종을 울린다. 문화의 미덕은 다양성에 있으며, 우리 겨레가 세계문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문화를 잃지 말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기에 우리 것을 지키자는 것이 수구주의가 아니라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방법이란 것이다.
이 편지들을 통해 떠올려지는 정씨의 모습은 지조있는 선비의 모습이다. 평생을 통해 자신이 뜻한 학문을 강직하게 추진하는 그의 '우보천리(牛步千里)' 정신은 제대로 된 목표 하나 없이 방황하는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이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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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문학동네
2003
1. 국가와 개인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명준은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된 후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행을 택한다. 그리고 중립국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며 소설이 끝난다.
요즘 한국 문학계의 '샤라포바'로 불리며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설가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은 옛날에 읽은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두 소설은 모두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검은 꽃>은 여기에 '자본주의와 개인'이란 연결고리가 하나 더 있다.
내 삶 속에서 조국은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공동체를 이뤄야만 살 수 있다. 그 공동체는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내적결속을 위해 이데올로기를 생산해낸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지도자가 생겨나고 이데올로기는 통치를 위해 더욱 강화된다. 이제 사람들은 억압당한다. 억압당하면서 사람들은 억압할 대상을 찾아나선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국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일까? 이러한 질문에 회의를 품은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이 역사속에서 스러져갔다. "무국적이 되려고 해도 나라가 필요"하다는 <검은 꽃>의 주인공 김이정은 말은 이 질문에 대한 냉혹한, 그러나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다.
<검은 꽃>은 1905년 5월14일 망해가는 조국을 등지고 꿈을 좇아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조선인들의 자취를 좇는 소설이다. 희망에 부풀었던 그들을 맞은 것은 강산(江山)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과 '악마의 발톱'처럼 생긴 에네켄(Henequen,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애니깽'은 잘못된 표기) 농장, 그리고 착취를 일삼는 지주들이었다.
사대부 양반, 도둑, 박수무당, 군인, 신부, 내시 등 조선에서는 서로 상대할 일이 없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낙오자가 생겨난다. 어떤 이는 환경에 잘 적응하여 편한 삶을 누린다. 이들의 꿈은 오직 하나, 빨리 돈 벌어서 농장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농장 밖으로 나온 이들에게도 혁명의 기운에 휘말린 멕시코는 안락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몇몇은 얼떨결에 혁명전쟁에 참가하고 과테말라의 정글까지 흘러들어간다.
국가에 버림받고 막판까지 치달은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이 여기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최초로 이 생각을 해낸 군인출신 조장윤은 이 나라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면서도 "원하는 마야인들은 들어와 살 수 있으나 우리의 지배를 받는다"는 모순된 단서를 단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또 다시 국가를 꿈꾸고, 그 국가 속에서 주도권을 잡아 통치할 대상을 갈구한다.
2. 자본과 개인
이 소설이 '한민족 수난사'류의 역사소설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들의 수난은 국가를 잃은 국민들의 수난일 뿐 아니라 더욱 근본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변부 맨 아래 먹이사슬에 위치한 인간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을 떠나와도, 에네켄 농장을 벗어나도, 혁명전쟁에 참가해도 이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적인 착취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소설 속 멕시코 이주 한인들이 겪는 고통은 냉혹하다. 자신들이 평생 믿고 따라온 유교적 가치, 신념 체계들은 일 순간에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짐승같은 취급을 받으며 목숨을 이어나간다. 우리는 이들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과거에 있었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동남아시아인들이 오늘 날 한국의 '에네켄 농장'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의 착취구조는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 더욱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얼마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여년전 장정일은 "한국이여 나를 놓아다오"라고 울부짖었다. 이 두 소설가의 말은 일맥 상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20대에 가장 부대끼며 고민했던 화두이기도 하다.
민족국가라는 틀을 벗어난 김영하의 상상력이 세계 문학에서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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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저
하태환 역
민음사
2001
이러한 장소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자연을 접하게 해주었다는 만족감에 뿌듯해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이 가상실재라면?
동물원에 있는 사자는 이미 더 이상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던 맹수가 아니다. 보육사가 던져주는 고깃덩이와 관람객들이 던지는 과자 부스러기를 받아 먹으며 좁은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가상 사자'다.
주말 체험 농장은 농부들의 수익사업장일 뿐이다. 그 곳에서 고객들에 의해 재배되거나 수확된 채소나 과일들은 농부가 행하는 재배나 수확의 결과물과 다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일종의 쇼에 불과할 따름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에 따라 가상실재, 즉 보드리야가 말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도 팽창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많은 가상실재를 필요로 하고, 점차 가상실재와 실재와의 경계선은 희미해져간다.
TV에 중계된 뉴욕의 9.11 테러 장면은 마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덴젤 워싱톤 주연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비상계엄(The Siege)'의 뉴욕 테러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한다. 이와 같이 이미지는 실재를 압도한다.
실재는 가상실재를 낳고, 가상실재는 실재를 잠식한다. 더 이상 실재가 실재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될 무렵, 시스템은 마치 실재가 존재하는 것 처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한다. 이것이 바로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다. 초원이 사라진 곳에, 포도밭이 사라진 곳에는 시뮬라시옹을 거쳐 동물원과 주말 체험 농장이 들어선다. 이 시뮬라시옹 과정의 끝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것 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상 전체가 가상실재로 대체되는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번역이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난해한 내용을 훨씬 더 난해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역자가 달아 놓은 주석은 원문을 읽는데 시각적으로 심각한 방해가 될 정도로 분량이 많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정성은 알겠지만, 차라리 책 뒤쪽에 역자 주석을 몰았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차라리 그 정성을 원문의 정확한 번역에 더 쏟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아 의미파악에 더 어려움을 준다. 예를 들어 113페이지의 제목 'Apocalypse now(세계의 종말 지금)'은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을 부적절하게 번역한 것으로, 이 영화가 1979년에 만들어졌고 이 책의 번역이 2001년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과연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원고에 대해 기본적인 검증절차나 제대로 거쳤는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덕분에 내게 '시뮬라시옹'은 나중에 다시 한번 원서로 읽어봐야 하는 책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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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지음
푸른숲
1999
허삼관은 인생의 어려운 고비 때 마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해결한다.
그에게 피는 살면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허삼관과 같은 민초에게 인생이란 이렇듯 온 몸을 던져 살아내야 하는 그 무엇이다.
피를 팔다가 죽을 뻔한 고비도 넘긴 허삼관이지만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되자 무기력감을 느낀다. 그에게 피는 곧 힘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팔기 위해 뽑은 피를 보충하기 위해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잔을 먹었지만 이제 돼지간볶음과 황주 두 잔을 사먹기 위해 피를 뽑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중국의 제 3세대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문화혁명을 전후해 중국 땅에서 살아간 평범한 어느 가장의 얘기다.
허삼관은 때로는 질투하고, 바람피고, 매몰차지만 그래도 마음 밑 바닥은 따뜻한 인간에 대한 정이 자리잡은 사람이다.
그와 그 가족,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문화혁명의 시기를 힘들게 힘들게 살아나간다.
그러나 위화가 들려주는 문화혁명 시대 민초들의 수난상은 우울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나타나는 해학들은 눈물이 맺히기 직전 피식하고 실소를 뱉어내게 만든다.
그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너무 힘들어 울고 싶어질 정도가 되면 오히려 실웃음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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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Good to Great: Why Some Companies Make the Leap...and Others Don't
by Jim Collins
김영사
2004
'Good is the enemy of Great.'
이 책은 저자 짐 콜린스의 베스트 셀러 전작 'Built to Last'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을 순서를 따지자면 'Good to Great'가 먼저, 'Built to Last'가 나중이다. 전자가 '(적당히) 괜찮은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위대한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한 책이라면, 후자는 '그렇게 해서 위대해진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은 방대한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 저자는 가설을 세워놓고 그를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엄격한 기준에 의거해 모은 데이터로부터 의미를 추출해내고 있다. 이런 데이터들은 때때로 저자가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카리스마적 CEO가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조사결과 위대한 기업들의 CEO는 조용하고 우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음은 저자가 뽑은 위대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전환점을 기준으로 15년간 누적 주식 수익률이 전체 주식시장과 같거나 그만 못하다가 이후 15년간 시장의 최소 3배에 달하는 누적 수익률을 보인 회사들이다.
-애벗, 서킷 시티, 패니 마이, 질레트, 킴벌리 클라크, 크로거, 뉴커, 필립 모리스, 피트니 보즈, 월그린즈, 웰즈 파고
우리가 잘 아는 코카콜라나 GE와 같은 회사들이 이 리스트에 없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콜린스는 데이터에 근거하여 위대한 기업들이 밟은 과정을 도출해 냈다.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의 전환은 축적(buildup)과 돌파(breakthrough)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disciplined people, disciplined thoughts, disciplined behavior에 의해 실현된다. 그리고 전 과정을 flywheel이 반복하면서 가속력을 붙여준다.
* disciplined people
-'단계5의 리더쉽' : 자기를 낮추지만 일은 가차없이
-'사람이 먼저...다음에 할 일' :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만든다
* disciplined thoughts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라(그러나 믿음을 잃지마라)': Stockdale Paradox
-'고슴도치 컨셉': 한 가지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기
* disciplined behavior
-규율의 문화
-기술 가속페달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쟁포로가 된 장군의 이름이다. 그는 지독한 고문과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풀려났다. 스톡데일은 그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낙관주의들'이라고 말한다. 현실이 암울하다는 것("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종국에는 성공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Stockdale Paradox다.
고슴도치 컨셉(hedgehog concept)은 다음 세가지 요소를 갖추는 부분에 대한 고집스런 돌파의지다.
-내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나의 경제엔진을 움직이는 것
-내가 깊은 열정을 가진 일
평생 단 한번의 기회라 하더라도 이 컨셉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버려라.
위대해지고자 하는 것은 물질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자질을 제대로 살려 그것을 궁극점까지 밀고 나가보는 것. 그것이 사람이 사는 이유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당신이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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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비만의 제국 Fat Land
그렉 크리처 지음
노혜숙 옮김
한스미디어
2004
옛날 음식이 귀하고 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적당히 배가 나온 것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뚱뚱한 사람은 살 빼는 것 하나 스스로 조절할 능력이 없는 무능력자로 낙인 찍히곤 한다.
비만은 분명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하지만 저자는 비만이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한다.
미국의 먹거리는 식품관련 대기업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료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점점 사람을 뚱뚱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1971년 발견된 HFCS(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다양한 음식에 첨가되어 가공식품을 더 싼 값에 더 맛있게 생산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HFCS는 분해과정을 거치치 않고 바로 간에 도달하는 이른바 '대사단락'을 유발하며, 또한 체내에서 인슐린의 역할을 흉내내어 당뇨병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패스트 푸드 업체들은 더 많은 음식을 팔기 위해 '수퍼 사이즈'를 채택했다. 빅맥, 세트메뉴 등이 그 결과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다. 인간의 포만감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에 더 많이 주면 더 많이 먹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온갖 비법 다이어트들이 난무하고 있다. 많은 비법들이 고통없이 살을 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을 빼기 위한 키워드는 '자제력의 회복'이다. 하지만 '비만 권하는 사회'는 음식에 대한 인간의 자제력을 크게 훼손시켜왔다.
저자에 의하면 백인보다는 멕시코 이주민이, 교외 부유층 지역보다는 시내의 슬럼가 지역 거주민들이 더 높은 비만도를 보이고 있다. 비만은 인종, 문화, 시간, 돈, 거주지역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 무엇보다 계층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만은 결국 자본주의의 질병이다. 자유경쟁시장이 빅맥과 콜라를 탄생시켰으며 슬럼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이 비만도와 연관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솔선수범해 아이들을 TV나 게임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야한다는 것. 또한 비만과의 전쟁터인 학교에서 체육교육을 강화하고 급식에서 패스트 푸드를 추방해야 한다. 비만 퇴치는 개인적인 의지 못지않게 공동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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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Kendall 저
박진아 역
넥서스
2004
당신이 영어회화시간에 쓴 표현을 놓고 원어민 강사가 쉬는 시간 동료 원어민 강사들과 키득거린다면?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실제 그런 일은 국내 어학원 곳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콩글리쉬'에는 단순히 문법적으로 틀린 데에서 그치지 않고 원어민이 들었을 때 이상한 어감을 갖게 되거나, 때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래 경우를 보면 이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해 질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뉴욕에 간 어떤 한국여성이 택시기사에게 '저 코너에서 좀 내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어떤 표현을 쓸 수 있을까?
Please get me off at the corner.
이렇게 말했다간 이후 어떤 끔직한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get someone off'는 속어로 '~를 뿅가게 해주다'란 뜻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 말을 들은 뉴욕의 택시기사는 이 동양 여자가 '저 코너에서 저 좀 뿅가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것으로 들을 위험이 많다는 것.
이쯤 되면 콩글리쉬를 더이상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워진다.
소위 '콩글리쉬'에 대해 다룬 책들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있다. 콩글리쉬 서적들은 한국인이 쓴 책들과 원어민이 쓴 책으로 나눠볼 수 있다.
국내에서 10여년 이상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쳐온 데이빗 켄달이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한국인이 말할 때 꼭 틀리는 영어(For the Last time, Learn English)'는 지난 1997년 그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데이빗 커서포스키가 쓴 '한국식 영어의 허점과 오류(Common Problems in Koran English, 외국어연수사)의 명맥을 잇는 책이라 할 만하다.
위 두 책의 공통점은 원어민 강사가 자신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의 영어 오류에 대해 쓰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가벼운 에피소드나 신변잡기적 수필류, 또는 두서없는 나열형이 그치고 있는 여타 다른 콩글리쉬 서적들과 달리 콩글리쉬라는 주제를 매우 진지하게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데이빗 켄들의 '한국인이...'는 손쉬운 만병통치 해법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지루한 책일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 공부라는 것이 단숨에 마스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꾸준하고 반복되는 학습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초급자던 고급자건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10년동안 모은 자료와 경험을 쓴 책 답게 내용이 매우 충실하다. 필요 이상으로 분량을 늘리거나 그림을 잔뜩 집어넣는 식의 '잔재주'를 부린 흔적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책 뒤에 있는 'Got it? Card'는 제대로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이 진지한 정공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상당수의 영어 초급자들에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될 것이다. 이 책은 일일이 떠먹여주기 보다는 독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어학 공부에 있는 합당한 방법이긴 하지만 수동적인 초급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좀더 고민이 있어야 했지 않나 생각된다.
책 디자인이나 전체 구성 등의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 그랬는지 몰라도, 원래 저자에 의해 영어로 씌여진 책을 국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소 지나치게 경박한 어투로 번역한 부분도 발견된다. 앞으로 나올 개정판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대폭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찾아보니 '한국인이 꼭 틀리는 영어 두번 다시 안틀리기'라는 제목으로 2005년 개정판이 나왔네요. 개정판은 안봐서 제가 말한 부분이 수정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과 연계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저자가 사비를 털어 만들었다는 웹사이트 www.kingkonglish.com도 잘 활용한다면 영어공부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모든 콩글리쉬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아래 소개하는 내용처럼 한국적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자신있게 한국적인 표현을 쓰라고 권한다.
Express Yourselves
모든 한국말을 다 영어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세계화의 주 맥락이 문화 정체성을 인정하는 일이다....(중략)...한국어에도 그대로 사용해야 할 말들이 많다. 한국과 친숙한 외국인들은 이미 아래의 말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해외에 나갈 때도 같이 들고 나가서 한국의 것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을 널리 확산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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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외 공저
박영사
2004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서울대 출신의 '총명'한 젊은 학자 4명이 각자 언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친 책이다.
언어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올바른 언어교육을 통한 올바른 언어사용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
1악장 '주경철의 읽기와 토론'에서는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로 알려진 필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책 읽기와 토론에 대해 대화식으로 주장을 펼친다.
2악장 '김종면의 영어교실'에서는 토플 만점으로 '영어의 달인'이라는 호칭을 얻은 필자가 생각하는 영어학습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어는 결론부터 말하고 부연하는 스타일의 언어이므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은 후 결론을 얘기하는 우리 말의 스타일로 영어를 하게되면 매우 지루한 말이 된다. 따라서 직장에서 공문서 작성하듯 영어를 하게되면 그런 문제를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그는 회화나 작문에서 자신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으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우리가 영어로든 국어로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글을 통해 무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경우 영작문은 문법 훈련에 그치고 만다.
'차라리 온 세상이 영어 하나만 썼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쓸데 없이 영어 배우는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하고 탄식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자는 다양한 언어들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다양성과 풍부함을 잊지 말자고 얘기한다.
3악장 '김재준의 생각하기'에서는 수학도 하나의 언어라고 전제한 뒤 일상생활과 수학 및 기호 등을 연관시켜 얘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은 왜 부패하는가'라는 소제목의 글을 매우 흥미있게 읽었다.
4악장 '신광현의 글짓기'는 글짓기가 왜 우리의 삶에서 그토록 중요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람직한 글짓기의 사례도 대화식 문답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시도되고 있는 '한 가지 테마를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해보기' 수법은 특히 유용한 기법이라고 생각된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 기법은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매우 효과가 있다.
언어는 수단이 아니다, 영어를 공부할 때는 토익 점수보다는 근본적인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게 좋은 줄 누가 모르나.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을 어떡하냐. 그렇게 여유부리며 영어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뭐 이런 식의 항변을 하게 되는 것을 본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외국어 공부는 편법을 쓰면 안된다. 취업때, 혹은 승진때 필요한 영어점수 높이려고 쪽집게 학원 과외도 받아보고, 좋다는 토익책도 다 사보고 했지만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영어실력이 결국 말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정도를 밟는 것 만큼 빠른 길은 절대로 없다.
이 책 3악장에서 저자는 수학은 원리만 이해하면 문제의 답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내 생각엔 영어도 똑같다. 무슨 무슨 시험을 대비해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언어로서의 영어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서 영어라는 새로운 창을 통해 펼쳐지는 세상을 즐기며 영어공부를 할 수 있다면 어떤 유형의 영어시험문제라도 특별히 그에 대비할 필요없이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시험이 있다고 치자. 우리 한국 사람이 그 시험 볼 때 특별히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 영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언어공부=시험공부 처럼 되어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우리가 언어를 공부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런 논의가 무척이나 한가해보일 수도 있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논의가 얼마나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이러한 주장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우리말 우리글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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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Freakonomics: A Rogue Economist Explores the Hidden Side of Everything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5
Freakonomics는 freak와 economics의 합성어다. ‘프리코노믹스’로 번역했다면 발음상 Freeconomics로 오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괴짜경제학’이라는 번역본 제목은 적절한 것 같다.
레빗은 기존의 경제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하찮은’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전혀 관계없을 것 같아 보이는 현상들에 대한 데이터로부터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이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흔히 우리가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고 으레 생각하던 것들이 꼼꼼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두 요인이 서로 관련 있다고 해서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의 원인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의 전환에서 그의 연구방향이 설정된다.
윤리학이 이상의 세계를 다룬다면 경제학은 현실의 세계를 다룬다. 경제학의 근본은 ‘인센티브’에 있다.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세상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인다. 이러한 인센티브를 제대로 이해해야 현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놀이방에 맡긴 아이를 지정된 시간보다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의 숫자를 줄여보고자 이들에게 벌금을 부과하자 늦는 부모들이 더 늘어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부모들이 내는 벌금이 지각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센티브는 때때로 복잡한 방향성을 지닌다.
정보(information)도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갖가지 전문 정보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레빗은 전문가들을 ‘그들이 아는 정보를 당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는 족속’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정보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 정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정이나 추측만으로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보로 무장한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한 무언의 지레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 바로 공포심이다. 공포심도 때로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된다. 이러한 공포심이 권력에 의해 국민들에게 심어지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유해물은 그 자체만으로는 위협적이지 않다. 유해물이 분노와 결합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리스크(risk)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권력, 전문가 집단, 언론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전문가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절박하게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이 두 진영은 서로 합작하여 사회 통념의 창조자가 된다.’
미국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도 자신의 최근 인터뷰 모음집 ‘제국주의적 야망(Imperial Ambition)’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나 그릇된 정보들을 미국인들에게 주입해 미국인들이 공포에 떨게 만들었는지 지적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1962년 인류를 핵전쟁 위기까지 몰고 갔던 쿠바 사태(Cuban Crisis) 역시 그릇된 공포에서 출발한 위기였다.
사회의 위계적 계층질서에서 꼭대기에 머물기 위해서 상류계층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띤다. 모두가 할 수 있고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류층이 지니는 문화는 상류층에 속하기 때문에 향유할 수 있다기 보다는 상류층에 속하기 위해서 향유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레빗은 미국인들의 이름을 놓고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과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이름은 따로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일반 사람들이 부유층 이름을 대거 차용하기 시작하면 부유층 부모들은 그 이름을 포기하고 다른 이름으로 옮겨간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부 대중화된 명품들은 상류층에서 아예 명품으로 쳐주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이와 비슷한 이치라 하겠다.
이 책의 미덕은 경제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으며, 그러한 시도를 쉬운 언어로 설명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레빗이 얼마나 글을 못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자신이 직접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전문 작가 더브너의 능수능란한 글 솜씨가 이 책을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것을 넘어 너무 가볍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굳이 비교하자면 영화로 치면 인디계열에 속할 것 같은 레빗의 책이 블록버스터(blockbuster)와 같은 제작과정을 거쳐 출시된 것 같은 느낌이다.
문학평론가 표정훈씨는 저서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일종의 '북 페티시즘(book fetishism)'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나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서점에 가서 책들을 어루만지노라면 커버, 내지, 두께, 질감 등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의 원서 ‘Freakonomics'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가 처음 만난 이 놈은 ’rough cut edition'이라는 형태로 출판되었는데, 소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책의 옆 부분을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처리했다. 그 울퉁불퉁한 종이 끝 질감을 느끼면서도 27,000원이라는 가격 때문에 눈물을 머금으며 내려놓고 대신 번역본을 사들고 왔던 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이 선택에서 나의 인센티브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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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am chomsky(노암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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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1 00:00
Noam chomsky(노암 촘스키)1928.12.7 ~ 현재그의 홈페이지: www.zmag.org/CHOMSKY/"소말리아 사태에 미국은 독재자를 지원 했습니다. 독재정권이 전복되자 소말리아는 무질서 상태에 빠져들어 내전과 기아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 형태로도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이윽고 내전이 수그러들고 기아 줌제가 해결되면서 상황이 개선되었지만, 인도적 지원은 주로 적십자 활동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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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am Chomsky
Metropolitan Books
2005
내가 노암 촘스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2학년 때 영어학개론을 배우면서였다. 그가 창시했다는 변형생성문법은 영어학개론책 뒷 부분에 최신이론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그냥 그렇게 유명한 언어학자인줄로만 알았던 그가 오랜동안 매우 적극적으로 약자들을 위한 정치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졸업하고 한참 지나서였다.
'학습하고, 조직하고, 행동하라! (learn, organize & act!)'. 촘스키가 대중들에게 던지는 키워드다.
이번에 읽은 <제국주의적 야망 - 9.11 테러 이후의 세계에 대한 대화>는 오랜동안 촘스키와의 인터뷰를 진행해오고 있는 Alternative Radio (http://www.alternativeradio.org)의 창시자인 David Barsamian이 2003년 3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촘스키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 정책은 급격하게 제국주의적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에 대한 국내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예방 전쟁 (preventive war)'. 부시 행정부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는 예방 전쟁의 시범 케이스가 됐다. 다른 국가가 하면 도발이고 미국이 하면 평화유지를 위한 노력이다. 촘스키는 "That's what power means."라고 일갈한다.
9.11 이후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미국의 힘, 지위, 명예에 대한 도발에 대응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응 당하는 국가의 국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미국에게는 힘, 지위, 명예의 문제다.
촘스키는 "미국은 대응 능력이 없는 국가들만 공격한다. 미국에게 맞서 싸울수 있다고 판단되는 나라는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는 공격대상이 됐지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9.11 이후 미국은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선봉에 미국 언론이 있다.
'embedded journalist'는 종군기자란 뜻인데, 정확히 말하면 미국 정부가 승인한 종군기자다. 이 역시 부시 행정부가 9.11이후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들의 기사는 미국 편향적일 수 밖에 없다.
공포에 질린 미국인들은 강한 리더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부시가 바로 그런 강한 리더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홍보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20년대는 대량생산 시스템인 테일러주의가 대세였던 시기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에서 정부와 미디어는 근로자들에게 '풍요의 철학'을 주입시키고 소비의 미덕을 강조했다.
촘스키는 홍보산업이 민주국가에서 더 발달해왔다고 주장한다. 힘으로 국민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그만큼 더 여론 조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파간다의 힘은 막대하다. 대중들은 프로파간다가 거짓임이 밝혀져도 여전히 믿는다.
촘스키가 보기에는 홍보쪽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추앙받는 Edward Bernays 같은 사람 역시 이러한 프로파간다 생산과 전파의 선두주자였을 뿐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 여론 정책과 미디어 정책은 성공적이어서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반전 운동 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아니라 교수들이다.
미국 주류 언론이 부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조는 '미국이 하려는 일은 맞는데 부시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촘스키는 '엘리트 미디어는 엘리트 지식인 문화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안되는지, 어떤 것이 강조되고 어떤 것이 무시되는지 등을 살펴보면 사회의 시스템적인 편견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영국의 경제지 'Financial Times'를 그 중 높게 쳐주고 있다. 경제지들은 일반 신문보다 더 냉정하게 현실적인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말은 기득권에 밀착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경제지들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미국이 벌여온 추악한 전쟁들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미군들이 전쟁 범죄로 비난받는 일이 간혹 있다. 몇년 전 이라크 군인 포로에 대한 미군들의 인격모독 사건 등이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촘스키는 '최악의 전쟁 범죄를 조직하고 승인하는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민간 관료들'이라고 꼬집는다.
언뜻 보기에 촘스키는 미국내에서도 상당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이론을 창시했고, MIT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지식인상은 어떠할까?
촘스키는 지식인들이 권한과 특권이 많을 수록 더 책임의식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식인들은 '일을 복잡해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정부와 언론의 프로파간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질문을 던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존 관행들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특히 지식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죄의식이 행동을 억압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게 촘스키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서 이라크 국민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그들을 위한 행동은 전혀 실천에 옮기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미국을 '실패한 국가 (failed state)'로 규정짓는 촘스키는 다보스 포럼에 대항하여 매년 수만명의 운동가들이 모이는 세계사회포럼 (World Social Forum)을 가능성 있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Another world is possible". WSF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노암 촘스키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빌 게이츠나 이명박처럼 된다고 해서 세상이 더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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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2007
타인의 고통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또는 내가 그 고통이 발생한 상황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음)이 확실해질 때 오락거리로 변한다. 이 경우 타인의 고통이 커지면 오락거리로서의 가치도 더 커진다.
이러한 주장은 듣기에 매우 불편하고 도덕적으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 당시 앙상하게 벌거벗은 몸으로 울부짖으며 길 앞으로 뛰어오는 어린 아이의 이미지를 보았다. 또 아프리카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굶어죽기 직전인 어린 아이와, 그 앞에서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이미지도 보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으며, 그러한 감정을 느낀 결과 어떠한 행동을 했던가? '저런...쯧쯧...정말 안됐네'하고 돌아서서는 곧 잊어버리지는 않았던가?
만약 우리가 그러한 광경을 컴퓨터 모니터나 현대적인 갤러리 벽에 걸려있는 사진액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그 앞에 서서 보게 된다면 어떠한 감정을 가지게 될까?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그 어린 베트남 아이의 엄마라면? 아프리카 아이의 형이라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느 정도 오락거리로 즐겨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남 아시아나 아프리카 저개발국의 서민들에게도 사진 찍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당연히 그들에게도 우리와 나란히 서서 사진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들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찍히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진 속에서 철저히 타자화 되어 있는 것이다.
궁핍과 고통을 강조하는 사진들이 흔히 갖는 특성은 사진 속 고통받는 이들이 익명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소말리아의 고통과 코소보의 고통,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모두 동일한 익명성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연민에 빠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도대체 대상이 너무 광범위해서 고통의 원인을 해결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에 의하면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것은'현대적인 경험' (P. 39)이다. 이 모두가 사진기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사진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은 대상을 기록하는 동시에, 대상을 변형시킨다. 뷰파인더로 구도를 잡는 행위는 동시에 구도 밖의 대상들을 배제시키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사진 속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unseen & unreported)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 드로브, 장 보드리야르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현실은 죽고 오직 대중매체를 통한 재현만이 남았다'며 '스펙터클의 사회'를 주장한다. 그러나 손택은 이러한 주장은 이 세상의 극소수인 부유한 지역에서 교육을 받은 극소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일 뿐이므로 이를 보편화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수전 손택은 사진 속에 담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연민에 빠지지만 말고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기 때문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곧 시들해지는 법" (P. 153)이기 때문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P. 154)
+ 참고 : 2003년 뉴욕타임즈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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